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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 “눈 잘 안보이지만… 마지막까지 배우로 살다가고 싶어”
등록일2025-07-12 조회수6

■ ‘연기인생 60년’송승환, ‘나는 배우다’전시회

 

8세때 데뷔 영화 등 120편

‘난타’로 첫 브로드웨이 진출

 

“인생 한번 정리하려고 마련

정윤희 등 당대의 스타들과

‘여로’ 등 출연작 자료 선봬”

‘나는 배우다’ 전시장에서 만난 송승환 씨는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생애 끝까지 연기할 것”이라고 했다. 김지은 기자
‘나는 배우다’ 전시장에서 만난 송승환 씨는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생애 끝까지 연기할 것”이라고 했다. 김지은 기자

‘오늘도 너무 많은 분들이 다녀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는 19일 SNS에 이렇게 썼다. 자신의 전시를 찾아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배우이자 연출가, 제작자, 예술감독, 방송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송승환(68) 씨. 그는 서울 계동의 갤러리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나는 배우다, 송승환 ’ 전(展)을 열고 있다. 오는 22일까지 진행하는 전시는 그의 예술 인생 60년을 조망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번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제가 곧 칠순이니까, 더 나이 들면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늦기 전에 하자는 마음이었지요. 마침 같은 이름의 책이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지난 17일 전시장에서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강혜숙 대표에게 전시장 소개를 부탁했더니 자기 갤러리에서 열자는 거예요. 봤더니 너무 좋은 거예요. 1964년에 개업한 목욕탕을 개조한 거래요. 제 데뷔연도와 비슷한 데다가 목욕탕 흔적이 남아 있는 게 제 흑백 사진과 분위기가 맞고, 또 제 대표작 중 하나가 ‘목욕탕 집 남자들’이니… (웃음).”

전시장은 3개관으로 나눠 그의 개인사(1층)와 연극·영화·드라마 출연(2층), 제작·연출(3층)의 궤적을 보여준다. 사진 150여 점과 아카이브 영상은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국 대중문화 흐름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는 1965년 여덟 살에 라디오 프로그램 아역 성우로 데뷔한 이후로 연극 30여 편, 영화 20여 편, 드라마 70여 편에 출연했다.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난타’를 비롯해 60여 편의 연극, 뮤지컬을 제작했고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다. 강부자, 왕영은 씨 등과 호흡을 맞춰 TV·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한 적도 있다. 명지대, 성신여대, 성균관대에서 교수로 후학을 키우기도 했다.

왼쪽 사진은 그가 8세 때 아역 성우로 데뷔할 때. 오른쪽은 1982년 TV문학관 ‘어떤 여름방학’에서 정윤희 배우와 함께한 모습.
왼쪽 사진은 그가 8세 때 아역 성우로 데뷔할 때. 오른쪽은 1982년 TV문학관 ‘어떤 여름방학’에서 정윤희 배우와 함께한 모습.

지난 2020년부터는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를 꾸려오고 있다. 원로 예술인들을 초대해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 채널에 출연한 60여 명의 사진을 담은 패널이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게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었던 것에 참 감사하죠. 이번에 나온 책의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연기와 제작 일을 하며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전시장에 오시는 분들이 책에 서명을 해 달라고 하면,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써 드리는 이유입니다.”

그는 전시 기간 오후엔 전시장에 나와서 방문객을 만나고 있다. 팬들뿐만 아니라 동료 예술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는 시간에도 원로 가수 박인희 씨와 배우 이한위, 전수경 씨 등이 인사를 하고 갔다.

전시장의 사진을 보면, 1970년대 시청률 70%를 기록한 드라마 ‘여로’부터 굵직한 작품들에 그가 빠지지 않고 출연한 것을 알 수 있다. 3대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등 여배우의 상대역을 했고, 이혜숙·이영애·김보연·김현주·견미리 배우와는 극 중 결혼식 장면을 촬영했다. “당대 유명 여배우들의 상대역을 많이 하니까, 젊었을 때 친구들이 ‘너 어제 누구랑 나오더라’ 하면서 부러워했지요, 하하.”

그는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 중 연극 ‘유리동물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에쿠우스’를 말씀하시고 저도 좋아하지만, ‘유리동물원’의 톰 캐릭터에 애정이 커요. 자신의 꿈이 있지만, 돌봐야 할 누이가 있으니 집을 지키며 돈을 벌어야 하는 소년 가장. 그게 20대 때 제 모습과 닮았거든요. 올 연말에 공연하는 ‘더 드레서’에서 늙은 배우 역할을 하는데, 그게 요즘의 저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알려진 것처럼 그는 망막색소변성증 등으로 시력 장애가 있어 눈앞의 30㎝ 정도 물체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장유정의 표현대로 ‘범상치 않은 적응력과 놀랄 만한 긍정성을 지닌’ 그는 장애와 더불어 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꿈꾸며 그것에 고마워한다.

“책 제목이 ‘나는 배우다’인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배우로 살다 죽고 싶다’로 하고 싶었어요. 시력이 나빠지고 나서 연출, 제작은 하기 힘들어졌잖아요.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기를 하며 노역 배우로 살다가 가고 싶은 게 희망이에요. 연기하다가 죽으면 제일 행복할 듯 싶어요.”

장재선 전임기자, 김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