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지옥과 디지털 세상에 갇힌 청춘들에 시 같은 '작은 위로' 전해 카게에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탄생 100주년 기념 <오사카 파노라마展> 전시회는 4월 7일까지 1주일 남아
세종문화회관에서 뜻깊은 전시가 열려 봄 학기를 맞은 학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카게에(그림자 회화)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이다. <오사카 파노라마>전이라는 타이틀은 후지시로의 80여 년에 걸친 작품 활동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오사카의 풍경을 담은 스케치 작품 <오사카 파노라마>를 비롯하여, 6m가 넘는 대형 타워 작품과 시기별 그의 대표작 200여 점을 선보인다.
후지시로는 이른 나이에 이미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 국화회전, 춘양회전, 신제작파전 등 미술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신예 작가였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카게에에 전념하며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났다. 후지시로의 작품을 시대별로 따라가다 보면 일본이란 나라를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인문학적 주제는 물론, 일본의 사회적 변화, 자연 풍경과 재해 등 다양한 변화상을 투영하는 까닭이다. 20~21세기에 걸친 일본 문화와 역사의 기록과도 같다. 일본 공영방송국 NHK 개국 방송에 그의 극단 <모쿠바자>가 전속으로 채택되었고, 1960년대 비틀즈가 최초 아시아 투어를 마친 부도칸에서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케로용이 등장하는 <케로용 쇼>가 열렸다.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의 광고에는 <포도주병의 이상한 여행> 작품이 등장하고, 날씨 예보와 같은 공익광고에도 그의 작품이 사용되었다. 쿠라시노테쵸우(삶의 수첩_일본의 대표 생활잡지)의 표지와 내지도 그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하나였으니, 그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그림자 회화 장르를 개척한 후지시로는 일본에서 100회 이상의 대형 순회 전시를 개최하였고, 그림자극만도 2천회 이상 상연하였다. 수공적 아날로그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홍수 속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후지시로 작품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더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고민과 두려움 속에 갇혀 있는 청소년들에게 아날로그적 감성은 작은 숨통이 돼주고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촉매제가 돼 준다. 핸드폰 등 디지털 스크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중력이 흐려지고, 스트레스와 불안, 뇌 기능이 저하된다는 과학적 사실도 아날로그 감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감을 동원해 소통해야 하는 인간 중심적인 아날로그 감성이 더욱 절실한 때다.
실제로 신학기가 시작되고 학교 단체로 전시를 관람한 한 청소년 관람객은 카게에의 섬세한 기법과 색채의 찬란함이 놀라웠고, 새로운 장르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육 관계자는 동화 속 세계처럼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주제 의식과 장인정신에 감동했다고 전하며, 후지시로의 폭넓은 인문학적 감수성이 카게에라는 감각적인 표현기법이 어우러진 독특한 전시였다고 평했다. 또한 교육자로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이 100세 작가의 창의적인 작품을 통해 감수성을 배양하고 예술가라는 직업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소재로 한 <첼로 켜는 고슈>, <은하철도의 밤>, <달밤의 전봇대>와, 세계의 민담을 다룬 <세 개의 오렌지>, <주머니쥐의 꼬리털>, <난쟁이의 이사> 연작 등을 소개하는 한편,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등 일본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선보인다.
전시 관계자는 "고도성장기 일본 대중 문화예술 발전의 중심에는 후지시로 세이지가 있었다"며 그가 한평생 천착해 온 사랑·평화·공생의 메시지에는 한·일 관계가 좀 더 나아지길 바란다는 작가로서의 바람과 인류에게 전하는 교훈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오사카 파노라마展>은 전체 관람가로 오는 4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며 '타임티켓' 홈페이지를 통해서 예매가 가능하다.